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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선장이 되었을 때 마련했던 가스총을 폐기했다. 사내들만이 우글거리던 원양어선이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이제와 고백한다. 선장직을 은퇴하는 날까지 불 밝인 머리맡 베개 밑에는 가스총, 오른편 메트리스 밑에는 사시미칼, 왼편 메트리스 밑에는 쇠파이프를 깔아놓고 지냈다.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이다. 그것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선장, 난바다를 헤쳐가는 선장의 리더십과는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폐기 사유를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사용 목적 상실"이라고 적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바다생활을 하며 한번도 사용하지 못한,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사라져 시원했지만 한편 슬프기도 했다. 그건 늙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선장 #가스총 #원양어선 #자위권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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