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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에서 주문진의 시계는 빠르다. 풀을 뽑고 제초제 살포하고 페인트 칠하고 시멘트 바르고 뒷마당 팬스와 출입문 만들고 앞마당 대문 만들고 하는 동안 20일이 지났다. 여전히 시멘트로 보수할 곳이 남았고 과실나무 살충제 살포와 슬라브 천정 방수작업은 시작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사과나무의 사과는 무럭무럭 자라고 내 배는 쑥쑥 드간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그리 편할 수 없다. 흔들리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어금니를 앙다물지 않아도 된다. 꾸룩 거리는 산비둘기 울음 소리에 잠이 깨고 창 넘어 들리는 뻐꾸기소리를 배경으로 마시는 커피맛은 환상이다. 그래도 조심하자. 기온이 33도다. 뜨겁다 못해 펄펄 끊는다#주문진 # 뒷마당 #사과나무 #산비둘기 #뻐꾸기. 2025. 6. 19.
가스총, 사용 목적 상실 첫선장이 되었을 때 마련했던 가스총을 폐기했다. 사내들만이 우글거리던 원양어선이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이제와 고백한다. 선장직을 은퇴하는 날까지 불 밝인 머리맡 베개 밑에는 가스총, 오른편 메트리스 밑에는 사시미칼, 왼편 메트리스 밑에는 쇠파이프를 깔아놓고 지냈다.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이다. 그것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선장, 난바다를 헤쳐가는 선장의 리더십과는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폐기 사유를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사용 목적 상실"이라고 적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바다생활을 하며 한번도 사용하지 못한,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사라져 시원했지만 한편 슬프기도 했다. 그건 늙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선장 #가스.. 2025. 6. 18.
절명의 순간 포토 노트/ 남적도해류 끊어진 물목에서 참치를 잡았다. 절명의 순간이 눈동자로 모여들어 붉어진 참치의 눈동자. 세상과의 인연이 왔다가듯 스쳐가는 만선에서 짓무르는 슬픈 꽃닢 #1 #남적도해류 #물목 #참치 #인연 #만선 2025. 6. 16.
가곡, 마중 소프라노 조수미 앨범 "사랑할 때" 타이틀곡으로 실린 마중은 허림의 시다. 작품으로는 시집 거기 내면.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등등이 있다. 독자와 소통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허림 시는 난해하지 않으며 토속적이고 따뜻하기도 하다. 마중을 소개하면 이렇다. 사랑이 너무 멀어/올 수 없다면 내가 갈께/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얼굴 마주하고 앉아/그대 꿈 가만가만/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그립다는 것은 오래전/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사는 게 무언지/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께. 딸만 있는 시인이 주문진 소돌 아들바위에 왔다 갔다# 가곡 #마중 #허림 #소돌 #아들바위 2025. 6. 16.
6월, 장미나무 장미나무 심고 얼마나 즐거워했던가. 집을 가진 기념식수였다. 벌써 40년 전 이야기, 사라졌던 기억이 돌아오면 그곳엔 젊은 엄마도 있고 나도 있었다. 어쩌면 고통스러웠던 날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일지 모르는 장미나무는 마른 꽃이 날리거나, 잎이 쌓여 주는 이웃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수없이 가지를 잘라냈다. 그래도 장미나무는 살아남아 엄마 사랑처럼 붉은 꽃을 피운다. 지난밤 잠시 쏟아진 빗방울에 시든 꽃잎이 바닥에 가득하다. 신새벽이라 더 슬퍼지는, 발밑에 꽃잎이 울긋불긋 번져 그래서 하염없어라. 나는 얼크러진 꽃을 두고 자꾸자꾸 죄스러운데 마음 깊이 가라만 앉는 저 붉은 그리움들. 엄마가 보고 싶다# 6월 #장미나무 #기념식수 #신새벽 #붉은 그리움 2025. 6. 15.
어느 59년생의 하루 눈을 뜨자마자 풀 뽑고 웃자란 나무가지 쳐내고 보일러실 천정 페인트, 집 벽 흰페인트, 밑변은 회색 그리고 창문이나 출입문 둘레는 청색으로 포인트를 넣는데 일주일이란 시간을 썼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가꾸는 일은 즐겁다. 그렇지만 페인트 칠을 끝내자마자 막 몰려오는 현기증에 동네병원에서 링겔 한 병 맞았다. 심장이 강철이라도 나이는 못속이겠다. 웃집 이웃은 더위를 먹었다고 했다. 목백일홍 2 그루, 장미, 자두 2 그루, 대봉감나무 2그루, 사과나무, 회양목, 아로마니아, 사과나무, 매실, 무궁화, 앵두, 석류, 오가피, 머루나무, 라일락의 격을 가꾸는 댓가치곤 싸게 먹혔다. 노동을 땀으로 커버하는 존재의 가치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그러면 살맛 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공인중계사 시험공부는 언.. 2025.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