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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선장의 바다97

가스총, 사용 목적 상실 첫선장이 되었을 때 마련했던 가스총을 폐기했다. 사내들만이 우글거리던 원양어선이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이제와 고백한다. 선장직을 은퇴하는 날까지 불 밝인 머리맡 베개 밑에는 가스총, 오른편 메트리스 밑에는 사시미칼, 왼편 메트리스 밑에는 쇠파이프를 깔아놓고 지냈다. 자위권 행사를 위해서이다. 그것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 선장, 난바다를 헤쳐가는 선장의 리더십과는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폐기 사유를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사용 목적 상실"이라고 적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바다생활을 하며 한번도 사용하지 못한,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사라져 시원했지만 한편 슬프기도 했다. 그건 늙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선장 #가스.. 2025. 6. 18.
가곡, 마중 소프라노 조수미 앨범 "사랑할 때" 타이틀곡으로 실린 마중은 허림의 시다. 작품으로는 시집 거기 내면.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등등이 있다. 독자와 소통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허림 시는 난해하지 않으며 토속적이고 따뜻하기도 하다. 마중을 소개하면 이렇다. 사랑이 너무 멀어/올 수 없다면 내가 갈께/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얼굴 마주하고 앉아/그대 꿈 가만가만/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그립다는 것은 오래전/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사는 게 무언지/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께. 딸만 있는 시인이 주문진 소돌 아들바위에 왔다 갔다# 가곡 #마중 #허림 #소돌 #아들바위 2025. 6. 16.
어느 59년생의 하루 눈을 뜨자마자 풀 뽑고 웃자란 나무가지 쳐내고 보일러실 천정 페인트, 집 벽 흰페인트, 밑변은 회색 그리고 창문이나 출입문 둘레는 청색으로 포인트를 넣는데 일주일이란 시간을 썼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가꾸는 일은 즐겁다. 그렇지만 페인트 칠을 끝내자마자 막 몰려오는 현기증에 동네병원에서 링겔 한 병 맞았다. 심장이 강철이라도 나이는 못속이겠다. 웃집 이웃은 더위를 먹었다고 했다. 목백일홍 2 그루, 장미, 자두 2 그루, 대봉감나무 2그루, 사과나무, 회양목, 아로마니아, 사과나무, 매실, 무궁화, 앵두, 석류, 오가피, 머루나무, 라일락의 격을 가꾸는 댓가치곤 싸게 먹혔다. 노동을 땀으로 커버하는 존재의 가치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그러면 살맛 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공인중계사 시험공부는 언.. 2025. 6. 14.
일월오봉도, 끌림 화실에 다녀왔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이 바쁜지 3년 동안 잡고 있던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일월오봉도다. 이상하게 이 풍경에게 끌린다. 조선시대 임금 자리의 뒷배경이 되었던 그림인데 업장의 굴레를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나는 아마도 수없는 전생 중에 임금 자리에도 있었나보다. 해와 달은 화폭에 직접 그리지 않고 따로 그려 붙이기로 했다. 일종의 꼴라주(콜라주)기법인데 그러면 어떤가? 예술은 내 마음이 꼴리는 현상 아닐까. 그림은 나에게 일종의 숨통이다. 지난한 글쓰기를 벗어나는, 무료한 백수를 탈출하는, 거친 바다에서 정주의 편안함으로 이끄는, 주문진에서 화실을 운영하고 계신 한희정선생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일월오봉도 # 임금 # 일월 #콜라주 #정주 2025. 6. 12.
반갑다, 멸치 더위가 시작되는 초여름 주문진항에서는 부산 근교의 대변항 멸치축제에서나 볼 수 있는 멸치털이 작업이 물량장 곳곳에서 벌어지곤 했다. 60년 전 주문진에서는 멸치도 흔한 물고기였다. 그리고 그 시절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고 사람들 간 인정도 푸근했다. 우리는 배 주변을 서성거리며 그물에서 털어낼 때 튕겨져 나온 멸치를 주웠는데 지금은 절도지만 선주들은 알고도 모른 척 했다. 그렇게 잡아온 멸치를 감자와 고추장만 넣고 찌지거나 조물거려 발라낸 살점을 회로 먹었다. 가히 그 맛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맛이었다. 마실길 어판장에 멸치가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반갑다, 멸치! 2025. 6. 11.
째복이라는 말, 그리움 주문진해변의 해당화가 피고지던 사구와 그곳에 남겼던 우리들의 미래와 작은 발자국들과 버짐 가득했던 친구들은 모두 흩어졌지만 바닷물은 그 바다처럼 맑고 푸르렀다.민들조개가 표준말이다. 원주민은 째복이라 했다. 목까지 오는 바닷물에 들어가 트위스트 추듯 모래를 발바닥으로 살살 비비면 느낌이 왔다. 그러면 머리를 바다에 넣거나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끼워 잡아 올렸고 그 자리에서 두 마리를 서로 두둘겨서 껍질 깨고 속을 발라먹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허기진 속을 채우는 별미가 되곤했다. 60년 전 이야기다.주문진을 찾은 풍류식객 조상제 샘과 째복 해루질에 나섰고 50마리 정도 잡았다. 해감이 끝나면 백합탕을 만들거나 봉골레 스타일 파스타에 도전 해야겠다. 2025년 첫입수였다. 시원하다. 2025.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