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44 바람들이 보이는가, 그대 남위 50도, 남서대서양. 북반구와는 정반대로 가는 계절이라 여기는 겨울이다. 게다가 위도까지 높은 까닭에 체감온도는 영하다. 열 나는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독고리를 겹치고 땀복을 입어도 다시 방한복을 덧입는다. 이빨고기를 어획하는 일은 단순하다. 미끼를 끼운 낚시를 바닷물에 던져놓았다가 걷어 들이는 반복이다. 단순하지만 내 몸에서 노동을 축출해야한다. 그것이 버거운 땀이 되거나 눈물이 되거나 가뭇없이 핏물이 되고 때로는 목숨까지 갈아넣야 한다. 멈출 수가 없다. 삶은 절대로 낭만이 아니다. 투승을 대기중인 선원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안데스산맥을 넘어온 바람이 뱃전 주변에서 용솟음친다. 파도를 더듬으며 선원들을 뜯어먹는 저 바람들이 보이는가, 그대. 아, 춥다#바다 #오어선장 #이윤길 #남서대서양 #남.. 2025. 9. 21. 말하는 것처럼 숨겨논 애인처럼 목숨을 걸고 파도를 헤쳐가다보면 검은 하늘 밑 흰구름도 되고 흰구름 같은 새도 되고 까닭도 없이 눈물도 되는 뱃길. 홀로 견뎌야 하는 나는 너를 보았지. 뱃머리가 바람을 휘젓고 지나갈 때마다 서걱서걱 베어지던 마음을 달래주는 동행의, 하얗게 굽이치다 허공으로 비상하는 그건 자유. 나는 두 손을 모우고 하염없는 새의 순정한 눈과 마주쳤다. 돌아보면 하관에도 갔었고 대마도도 보았으며 카페 수에서 달달한 커피도 마셨다. 무지개색 아름다운 달팽이도 보았지. 그럴 때마다 새로운 영지에서 내 세상은 깊어졌다. 그러고보니 지상에서 좋은 날도 없지 않았으나 날개를 꺾어 끄덕이듯 새의 깃털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바다로 잘 돌아왔다 말하는 것처럼, 숨겨논 애인처럼##바다 #오어선장 #이윤길 #큰알바트로스 #동행 #새로운.. 2025. 9. 20. 투승하다 메로는 일본말 표현이다. 이빨고기다. 남극이빨고기와 구별하기 위해서 이번 목표종은 파타고니아이빨고기라고 부른다. 나흘을 전속으로 달리자 어장이다. 조업에 필요한 낚시바늘마다 미끼가 채워졌고 자정부터 투승이다. 삶은 현실이고 부두에서 계류색을 끄르는 순간부터 현실은 전쟁터이다. 바다를 떠돌기 위해서는 부력이 필요하고 부력과 근기를 얻기 위해 나를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나를 버린 빈자리에 만선을 구겨넣어야 정박의 달콤함이 따라온다. 선원들은 돌아가기 위해서 전력 질주다. 전투준비를 마쳤다. 비가 부슬부슬한 지금은 선장님의 투승명령을 기다리는 시간, 선원들은 렛고 라는 지시로 후끈 달아오른 갑판에서 운명 따라 걷는다.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한 치를 예측할 수 없는 미래 그 장정의 앞에서 그래도 웃는다. .. 2025. 9. 19. 고요히 반짝이는 적막 하나 8월22일 치뤘던 검량사 2차시험 면접시험 합격을 연락 받았다. 배는 전속으로 대서양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고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이 빛날 때였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잡은 채 허공을 향해 연속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그러며 살아있네 라고 소리쳤다. 이 나이에 자격증 하나가 남은 내 인생을 흔들 수는 없다. 그러나 사그러드는 육신에 비빌 언덕을 만들고 그곳에서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건 마치 아무도 없는 사막의 오아시스 아래에서 별을 찾는 즐거움일 것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보지 못하던 별자리들이 떠있다. 남십자성과 마젤란운하와 에타 카리나 성운 등등. 그리고 그 곁에서 고요히 반짝이는 적막 하나#바다 ##오어선장 #이윤길 #검량사 #대서양.. 2025. 9. 19. 출항하다 푼타 아레나스를 출항한 배는 마젤란해협 따라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탐험과 도전의 거창한 이름 밖 만선을 위해서. 바다에 몸이 천천히 젖기 시작했고 가슴은 시퍼렇게 뛰었다. 나는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저 드넓은 해원을 헤매다보면 온몸에 비늘이 생기고 팔다리는 지느러미로 변해가겠지. 나도 내가 무엇을 볼련지 모른다. 그게 스스로 위로할 수 없는 쓸쓸함이 아니길 바랄 뿐, 그러나 사랑을 위해 뭍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그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선미 한구석에서 훌쩍거리는 선원이 보인다. 그야말로 귀때기가 새파란 어린 놈이다. 틀림없이 처음으로 엄마품을 벗어난 신참이겠지. 뱃머리가 어디로 향하든 배가 얼마나 흔들리든 그랴, 아파야 청춘이다. 배는 끝없이 파도를 넘는다#바다 #오어선장 #이윤길 #출항 #마젤.. 2025. 9. 19. 수평선 너머에서 사흘밤의 두려움이 물러가자 폭풍은 물러갔다흑백의 필림사진처럼 텅 비어있는 수평선에서오늘 만큼은 너와 동무가 되어줄 수 있다 라고 불량했던 바다의 어깨을 다둑이자 해가 솟았다사라질 수 없는 운명, 시지푸스의 불덩이처럼#바다 #오어선장 #이윤길 #해양문학 #포토포엠 2025. 9. 15. 이전 1 2 3 4 ··· 24 다음